간접경험

연기란??, 인연생기란??

rain down 2015. 3. 4. 02:19

연기(緣起)는 인연생기(因緣生起) 즉 (因: 직접적 원인)과 (緣: 간접적 원인)에 의지하여 생겨남 또는 인연(因緣: 통칭하여, 원인)따라 생겨남의 준말로,[1][2][3] '연(緣: 인과 연의 통칭으로서의 원인)해서 생겨나 있다' 혹은 '타와의 관계에서 생겨나 있다'는 현상계(現象界)의 존재 형태와 그 법칙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세상에 있어서의 존재는 반드시 그것이 생겨날 원인[因]과 조건[緣]하에서 연기의 법칙에 따라서 생겨난다는 것을 말한다.[4] 연기의 법칙, 즉 연기법(緣起法)을 원인과 결과의 법칙 또는 줄여서 인과법칙(因果法則) 혹은 인과법(因果法) 또는 인연법(因緣法)이라고도 한다.[3][5] 엄밀히 말하면, 고대 인도에서는 인과법에 대해 여러 이론들이 있었으므로, 연기법은 고타마 붓다가 설한 인과법, 또는 불교에서 주장하는 인과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고타마 붓다는 《잡아함경》 제12권 제299경 〈연기법경(緣起法經)〉에서 연기법은 자신이나 다른 깨달은 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며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고 출현하지 않음에 관계없이 우주(법계)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보편 법칙, 즉 우주적인 법칙이며, 자신은 단지 이 우주적인 법칙을 완전히 깨달은[等正覺] 후에 그것을 세상 사람들을 위해 12연기설의 형태로 세상에 드러낸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4][6][7]

출처는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wiki/연기_(불교)


이 연기설에 기반을 둔 윤회설 [윤회(輪廻, 산스크리트어: संसार Saṃsāra영어: reincarnation)는 일정한 깨달음경지 또는 구원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그 깨달음경지 또는 구원된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하여 이 세상으로 재탄생한다는 교의 또는 믿음이다.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윤회] 이 불교, 힌두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초기 불교, 석가모니는 윤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 인도 불교에서 윤회설을 받아들여, 전파된 것으로 본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연기법(緣起法)은 당신께서 만든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깨달은 이[餘人]가 만든 것입니까?"

고타마 붓다는 그 비구에게 답하였다.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所作]도 아니요, 또한 다른 깨달은 이[餘人]가 만든 것[所作]도 아니다. 그러므로 연기법은 저들[彼] 여래들[如來]이 세상에 출현하거나 세상에 출현하지 않거나 항상 법계(法界)에 존재한다[常住].

저들[彼] 여래들[如來]은 이 [우주적인] 법칙[法]을 스스로 깨달아 완전한 깨달음[等正覺]을 이룬다. 그런 뒤에, 모든 중생들을 위해 [이 우주 법칙을 중생들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여러 형태로] 분별해 연설하고[分別演說] [중생들에게] 드러내어 보인다[開發顯示].

— 잡아함경》 제12권 제299경 〈연기법경(緣起法經)〉. 한글본



"고타마 붓다가 보리수 밑에서 얻은 깨달음의 내용은 연기의 이법(理法)이라고 말해지며, 따라서 연기는 불교의 근본진리이며 불교에 의한 세계관 · 인생관을 이룬다. 나아가, 연기는 고타마 붓다의 출세 · 불출세와 무관한 진리로서 불교에만 국한되는 진리가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절대의 진리 · 보편 타당한 객관적 진리라고 하며(法 · 다르마)이라는 낱말의 여러 가지 의미 중에는 이러한 우주 법칙 또는 우주적 진리로서의 의미도 들어있다.[4]

그러므로 "연기(緣起)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라든가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법을 보는 자는 부처를 본다"라고 말한다. 즉 진리로서의 연기를 올바로 보게 된다면 불교를 이해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4]"



따라서, 고타마 붓다가 보는 우주적 법칙, 보편의 법칙, 진리 = 연기법

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연기설을 말할 때, '독립적인 나'는 있을 수 없고, 나와 남을 둘로 나눌 수 없다고 하여 자타불이自他不二 라고 한다 :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 - 자비를 베풀어라. 여기서 자비의 중요성을 강조.

그러나 불이(不二)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줄임말이다. 따라서 “다르지 않다”라는 말을 할 때에는 “같지 않다”라는 말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중생과 부처가 하나’이며 ‘무명과 깨달음이 하나’라는 말에는 당연히 그 중생과 부처가 다르며, 무명과 깨달음이 엄격히 구별되어야 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0

라고..

또한 브라만교와 힌두교의 윤리사상은 "<<우파니샤드>>에서는 '너는 이 모든 세상이다', '나는 너이다'"

라는 자타불이를 윤리적 기초로 두고있고, 힌두교와 브라만교의 윤리사상은 이러한 견해를 근거로 했다. 이것에 대해 불교는, "개개의 인간을 형이상학적 실체로 생각하여 그들 사이의 동이(同異) 관계를 고찰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출처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n6nR&fldid=NBmh&datanum=1579


자타불이을 영어로는 non - duality라고 하며,


Nondualism, also called non-duality, may refer to the nonduality of absolute and relative (advaya) in the Mahayana Buddhist tradition, the non-difference of Ātman and Brahman in the Advaita Vedanta tradition, and "nondual consciousness",[note 1] the non-duality of subject and object, in modern spirituality.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Nondualism


여기서 아트만과 브라만이란?? 

사실, 이 개념은 힌두교에서 나온 것으로 (불교에서 나온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음, 불교에서도 쓰긴 함)


브라만(Brahman)은 힌두교에서 우주의 근본적 실재 또는 원리를 가리킨다.[1] 아트만이 진정한 자아를 뜻하는 개별적 · 인격적 원리인 반면, 브라만은 우주적 · 중성적(中性的) 원리이다.[1] 한자로는 (梵)으로 음역(音譯)된다.

아트만(Ātman, 산스크리트어: आत्मन्)은 힌두교의 기본 교의 중의하나이다. 힌두교의 또 다른 기본 교의인 브라만이 중성적(中性的) 원리라면 아트만은 인격적 원리라 할 수 있다. 힌두교에서 생명은 숨과 같은 의미로 쓰였으며 아트만의 원래 뜻은 숨쉰다는 뜻이다. 숨쉬는 생명인 아트만은 '나'를 말하며, 따라서 한자로는 아(我)로 표기된다. 힌두교에서는 개인에 내재 (內在) 하는 원리인 아트만을 상정(想定)하고, 우주의 궁극적 근원으로 브라만을 설정하여 이 두 원리는 동일한 것(범아일여, 梵我一如)이라고 파악한다.


음, 그러니까 인두교에서 근본적인 개념. 

다시 연기로 돌아가서..


연기(緣起)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 프라티트야 삼무파다(प्रतीत्यसमुत्पाद pratītyasamutpāda)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인연생기(因緣生起: 과 에 의지하여 생겨남, 인연따라 생겨남)의 준말이다.[1] 

프라티트야(산스크리트어: pratītya)의 사전적인 뜻은 '의존하다'이고 삼무파다(samutpāda)의 사전적인 뜻은 '생겨나다 · 발생하다'이다.

연기(緣起), 인연생기(因緣生起: 과 에 의지하여 생겨남, 인연따라 생겨남), 즉 '프라티트야 삼무파다'는 영어권에서는 dependent arising (의존하여 생겨남)[10], conditioned genesis (조건지워진 생성), dependent co-arising (의존된 상호발생)[11][12], 또는 interdependent arising (상호의존하여 생겨남)[13]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Pratītyasamutpāda (Sanskritप्रतीत्यसमुत्पादPaliपटिच्चसमुप्पाद paṭiccasamuppāda) is commonly translated as dependent origination or dependent arising. The term is used in the Buddhist teachings in two senses:

  • On a general level, it refers to one of the central concepts in the Buddhist tradition—that all things arise in dependence upon multiple causes and conditions.
  • On a specific level, the term is also used to refer to a specific application of this general principle—namely the twelve links of dependent origination.

http://en.wikipedia.org/wiki/Pratītyasamutpāda




갑자기 연기설이 뭐지??? 에 대해 생각하다가 궁금해져서 대충 검색해서 복붙해놓고 다시 정리 (paraphrasing) 까지.

하하 뭔가 뿌듯하당..  과제한 느낌???ㅋㅋㅋㅋㅋ

암튼 연기설은 이런 것이라고 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