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란??, 인연생기란??
연기(緣起)는 인연생기(因緣生起) 즉 인(因: 직접적 원인)과 연(緣: 간접적 원인)에 의지하여 생겨남 또는 인연(因緣: 통칭하여, 원인)따라 생겨남의 준말로,[1][2][3] '연(緣: 인과 연의 통칭으로서의 원인)해서 생겨나 있다' 혹은 '타와의 관계에서 생겨나 있다'는 현상계(現象界)의 존재 형태와 그 법칙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세상에 있어서의 존재는 반드시 그것이 생겨날 원인[因]과 조건[緣]하에서 연기의 법칙에 따라서 생겨난다는 것을 말한다.[4] 연기의 법칙, 즉 연기법(緣起法)을 원인과 결과의 법칙 또는 줄여서 인과법칙(因果法則) 혹은 인과법(因果法) 또는 인연법(因緣法)이라고도 한다.[3][5] 엄밀히 말하면, 고대 인도에서는 인과법에 대해 여러 이론들이 있었으므로, 연기법은 고타마 붓다가 설한 인과법, 또는 불교에서 주장하는 인과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고타마 붓다는 《잡아함경》 제12권 제299경 〈연기법경(緣起法經)〉에서 연기법은 자신이나 다른 깨달은 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며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고 출현하지 않음에 관계없이 우주(법계)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보편 법칙, 즉 우주적인 법칙이며, 자신은 단지 이 우주적인 법칙을 완전히 깨달은[等正覺] 후에 그것을 세상 사람들을 위해 12연기설의 형태로 세상에 드러낸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4][6][7]
출처는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wiki/연기_(불교)
이 연기설에 기반을 둔 윤회설 [윤회(輪廻, 산스크리트어: संसार Saṃsāra, 영어: reincarnation)는 일정한 깨달음, 경지 또는 구원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그 깨달음, 경지 또는 구원된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하여 이 세상으로 재탄생한다는 교의 또는 믿음이다.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윤회] 이 불교, 힌두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초기 불교, 석가모니는 윤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 인도 불교에서 윤회설을 받아들여, 전파된 것으로 본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연기법(緣起法)은 당신께서 만든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깨달은 이[餘人]가 만든 것입니까?"
고타마 붓다는 그 비구에게 답하였다.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所作]도 아니요, 또한 다른 깨달은 이[餘人]가 만든 것[所作]도 아니다. 그러므로 연기법은 저들[彼] 여래들[如來]이 세상에 출현하거나 세상에 출현하지 않거나 항상 법계(法界)에 존재한다[常住].
저들[彼] 여래들[如來]은 이 [우주적인] 법칙[法]을 스스로 깨달아 완전한 깨달음[等正覺]을 이룬다. 그런 뒤에, 모든 중생들을 위해 [이 우주 법칙을 중생들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여러 형태로] 분별해 연설하고[分別演說] [중생들에게] 드러내어 보인다[開發顯示].
— 《잡아함경》 제12권 제299경 〈연기법경(緣起法經)〉. 한글본
"고타마 붓다가 보리수 밑에서 얻은 깨달음의 내용은 연기의 이법(理法)이라고 말해지며, 따라서 연기는 불교의 근본진리이며 불교에 의한 세계관 · 인생관을 이룬다. 나아가, 연기는 고타마 붓다의 출세 · 불출세와 무관한 진리로서 불교에만 국한되는 진리가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절대의 진리 · 보편 타당한 객관적 진리라고 하며, 법(法 · 다르마)이라는 낱말의 여러 가지 의미 중에는 이러한 우주 법칙 또는 우주적 진리로서의 의미도 들어있다.[4]
그러므로 "연기(緣起)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라든가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법을 보는 자는 부처를 본다"라고 말한다. 즉 진리로서의 연기를 올바로 보게 된다면 불교를 이해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4]"
따라서, 고타마 붓다가 보는 우주적 법칙, 보편의 법칙, 진리 = 연기법
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연기설을 말할 때, '독립적인 나'는 있을 수 없고, 나와 남을 둘로 나눌 수 없다고 하여 자타불이自他不二 라고 한다 :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 - 자비를 베풀어라. 여기서 자비의 중요성을 강조.
그러나 불이(不二)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줄임말이다. 따라서 “다르지 않다”라는 말을 할 때에는 “같지 않다”라는 말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중생과 부처가 하나’이며 ‘무명과 깨달음이 하나’라는 말에는 당연히 그 중생과 부처가 다르며, 무명과 깨달음이 엄격히 구별되어야 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0
라고..
또한 브라만교와 힌두교의 윤리사상은 "<<우파니샤드>>에서는 '너는 이 모든 세상이다', '나는 너이다'"
라는 자타불이를 윤리적 기초로 두고있고, 힌두교와 브라만교의 윤리사상은 이러한 견해를 근거로 했다. 이것에 대해 불교는, "개개의 인간을 형이상학적 실체로 생각하여 그들 사이의 동이(同異) 관계를 고찰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자타불이을 영어로는 non - duality라고 하며,
Nondualism, also called non-duality, may refer to the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Nondualism
여기서 아트만과 브라만이란??
사실, 이 개념은 힌두교에서 나온 것으로 (불교에서 나온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음, 불교에서도 쓰긴 함)
브라만(Brahman)은 힌두교에서 우주의 근본적 실재 또는 원리를 가리킨다.[1] 아트만이 진정한 자아를 뜻하는 개별적 · 인격적 원리인 반면, 브라만은 우주적 · 중성적(中性的) 원리이다.[1] 한자로는 범(梵)으로 음역(音譯)된다.
음, 그러니까 인두교에서 근본적인 개념.
다시 연기로 돌아가서..
연기(緣起)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 프라티트야 삼무파다(प्रतीत्यसमुत्पाद pratītyasamutpāda)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인연생기(因緣生起: 인과 연에 의지하여 생겨남, 인연따라 생겨남)의 준말이다.[1]
프라티트야(산스크리트어: pratītya)의 사전적인 뜻은 '의존하다'이고 삼무파다(samutpāda)의 사전적인 뜻은 '생겨나다 · 발생하다'이다.
연기(緣起), 인연생기(因緣生起: 인과 연에 의지하여 생겨남, 인연따라 생겨남), 즉 '프라티트야 삼무파다'는 영어권에서는 dependent arising (의존하여 생겨남)[10], conditioned genesis (조건지워진 생성), dependent co-arising (의존된 상호발생)[11][12], 또는 interdependent arising (상호의존하여 생겨남)[13]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Pratītyasamutpāda (Sanskrit: प्रतीत्यसमुत्पाद; Pali: पटिच्चसमुप्पाद paṭiccasamuppāda) is commonly translated as dependent origination or dependent arising. The term is used in the Buddhist teachings in two senses:
- On a general level, it refers to one of the central concepts in the Buddhist tradition—that all things arise in dependence upon multiple causes and conditions.
- On a specific level, the term is also used to refer to a specific application of this general principle—namely the twelve links of dependent origination.
http://en.wikipedia.org/wiki/Pratītyasamutpāda
갑자기 연기설이 뭐지??? 에 대해 생각하다가 궁금해져서 대충 검색해서 복붙해놓고 다시 정리 (paraphrasing) 까지.
하하 뭔가 뿌듯하당.. 과제한 느낌???ㅋㅋㅋㅋㅋ
암튼 연기설은 이런 것이라고 합니당.